연예계 떠나 노량진 재수학원 들어갔던 배우 근황

김가영 기자2019-12-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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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화면 캡처
90년대 어린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지구용사 벡터맨’ 시리즈. 당시 어린이들은 벡터맨 주제가를 줄줄 외워 부르고 각자 영웅 하나씩 맡아 역할극 놀이도 했습니다. 유명 배우 엄지원, 김성수, 기태영 등도 벡터맨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배우도 있습니다. ‘벡터맨 2기’에서 악당 ‘메두사’를 연기한 배우 박미경 씨는 현재 서울 대치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1월 28일 그를 만나 연예계를 떠난 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자기평가 후 내린 선택은 ‘배우→노량진 재수학원’
박 씨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90년대 하이틴 잡지 ‘CeCi’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자연스럽게 연예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그는 조여정, 한지민 등 지금의 톱 배우들과 신인 시절을 보냈습니다.

배우로 활동하던 당시에 어떤 작품에 참여하셨나요?

“그때 사이버 가수 아담이 나왔고 이어서 류시아가 나왔어요. 그런데 류시아가 바로 제 얼굴로 만든 CG였어요. 이후 앤썸, 캔 등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는데 지금도 노래방 가면 제 모습이 나오더라고요.(웃음) 방송 활동은 신인 연기자가 하던 건 다 했어요. 호기심 천국, 좋은 친구들, MBC 베스트 극장에도 출연했어요.”

‘벡터맨’ 출연 이전에도 활동을 많이 하셨네요.
“일회성 프로그램을 하다 보니 저에게도 역할이 주어지더라고요. 처음에 메두사 역할로 오디션을 봤는데 악역이니까 좀 그렇잖아요. 저도 공주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역할이라는 것을 맡고 싶었기 때문에 참여를 했어요. 영화판을 먼저 찍고 TV시리즈를 촬영했어요. 그런데 벡터맨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되었네요.”

방송화면 캡처
배우 생활을 왜 그만두셨나요?
“벡터맨 이후에 주말드라마 조연 역할이 들어온 거예요. 지상파 3사가 대부분의 시청률을 점유하던 시대였는데요. 주말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건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고 알려지게 된다는 뜻이었어요.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전 배우로서의 능력이 많이 부족했어요. 연기력이나 외모 등 모든 면에서요. 진심이 담긴 농담으로 말씀드리면 이때 김태희 씨가 데뷔했는데 제가 비교가 안 되잖아요. 포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웃음)



배우를 그만둔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복학을 했어요. 벡터맨에서 받은 출연료로 등록금을 냈어요. 졸업 후 PD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 직후라 전체적으로 상황이 어렵기도 했고, 또 제가 현장을 경험하니까 훌륭한 PD가 될 재목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많은 스텝들을 통솔할 지도력이나 체력이 안되더라고요.”

박미경 제공
그래서 한의사로 전향을 하신 거군요.
“네. 학창시절 1교시 맞춰서 가는 게 힘들 정도로 몸이 안 좋았어요. 당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도 아무런 게 안 나와요. 그런데 한의원 약을 지어먹고 괜찮아지는 거예요. 아플 때마다 한약 먹고 이겨내면서 저한테 한의학이 신기한 학문이 됐어요. 제가 도움을 받아왔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도전했어요.”

한의대 수험 공부를 다시 하셔야 했겠네요.
“그렇죠. 제가 문과를 졸업했잖아요. 이과 수능을 봐야 한의대에 갈 수 있어서 노량진 재수학원에 들어갔어요. 혹시 ‘장수생의 함정’이라고 아세요? 재수, 삼수 계속하다 보면 ‘나 이거 다 아는 건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이과 수학을 처음 접했잖아요. 처음 들으면서 제대로 이해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공부가 재미있었어요. 또 그때가 2002년이었는데 월드컵 경기가 열리면 재수학원 동생들이랑 응원도 하고 스트레스 풀어가면서 재미있게 공부했어요.”

96학번이었던 박미경 씨는 다시 수험을 치르고 2003년 상지대학교 한의대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늦깎이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제가 03학번인데, 04까지는 늦게 입학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후로는 드물어졌지만요. 늦깎이 한의대 학생들 중에는 화학과 교수 출신, 물리학과 포닥(박사후연구원)도 있었어요. 각양각색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 배울 점도 많고 신기했어요.

정식 커리큘럼 외에 스터디도 하고 활동도 많아서 바쁘게 보냈어요. 방학에는 기호학파 성리학 정통 서당에서 생활하며 ‘한학’을 배우기도 했고요. 학교만 다니면 임상에서 부족함을 느낄 수 있어서 그 이상으로 채워가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린이들 미움받던 ‘악당’에서 아픈 사람 돌보는 ‘한의사’로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한의대 졸업 후 바로 개원을 했나요?
“보통 졸업하고 나서는 병원에 들어가든지 로컬 개원을 하든지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요즘엔 연구직도 많이 가시지만요. 저는 나이가 있다 보니까 로컬 쪽으로 나오게 됐어요. 병원급 한방 과장으로 있다가 로컬 개원가에서 페이닥터로 생활하며 임상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 개원을 했고요.”

한의사가 되어보니 어떠세요? 흔히 면허를 가진 의료인들은 앞길이 창창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솔직하게 말할까요?(웃음) 저도 한의대에 들어갈 때는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잘 되는 한의원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잘 되는 소수는 굉장히 잘 되지만 고전하는 분들도 많아요. 저 역시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어요. 정말 면허증으로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건 옛날 얘기 같아요. 대신 은퇴를 늦출 수 있는 점은 장점인 것 같아요.”

경쟁력을 어떻게 쌓으세요?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텐데 한의사는 정말 평생 공부하는 직업이에요. 어려운 케이스에 대해 다 같이 스터디하며 익히고 있어요. 또 한 가지는 제가 방송을 하잖아요.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분들에게 건강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이니까 잘 해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한의학이라는 게 너무 어려워요. 단어도 어렵고요.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해드릴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해요.”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박 씨는 현재 MBN ‘엄지의제왕’ 등 여러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강 정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투잡’ ‘제2의 직업’이 유행입니다. 원장님도 방송을 병행하고 있는 입장에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요즘엔 안전한 직업이라는 게 없습니다. 책에서 보니까 2035년이면 AI가 수많은 직업을 대체한다고 하는데요. 의사나 한의사는 더 빨리 AI에 의해서 도태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멀리 갔나요?(웃음)

저도 본업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해요. 영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유튜브에서 ‘김미경tv’를 즐겨 보는데 이 분이 영어공부를 2년 바짝 해서 외국 작가들과 영어로 인터뷰를 하는데 유창하게 잘하시는 거예요. 정말 멋있었어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재미있게 하다 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한의사가 되고 싶나요?
“도움을 드릴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요. 예전에는 실력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실력만 있다고 사람을 낫게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환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요.”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