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차 방송작가가 말하는 ‘진짜 힘든 부분’

김가영 기자2019-09-3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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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예능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한 방송작가를 본 적 있으시죠? 놀이터 같은 근무 환경에서 스타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직업처럼 보여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들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경로로 취업을 하는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다른 직업들처럼 '공채'가 있는 직업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KBS 2TV ‘배틀트립’ 우정화 작가에게 직업에 대한 이야기, 고충, 입문 과정 등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우정화 작가는 2009년부터 KBS ‘스펀지’ MBC ‘우리 결혼했어요’ ‘아빠 어디가?’ ‘복면가왕’ 등에서 경력을 쌓아온 11년 차 작가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출연자 섭외, 스케줄 조율, 여행지 결정, 대본 작성, 촬영 현장 진행, 편집 회의 등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이런 일을 맡은 건 아닙니다. 초년생 시절에는 선배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는데 주로 자료조사, 보도자료 작성, 장소 섭외 등을 했어요."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Q. PD와 작가의 영역이 많이 다른가요?

"PD와 작가는 한배를 탄 가족 같아요. 협업해서 방송이라는 과제를 완성해내는. 어느 한쪽만 있어서는 완성될 수 없는 사이. 함께 그린 그림을 작가는 글로 써내고 PD는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들어놓은 과제를 연기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주는 거죠. 아무리 준비를 잘 해놓아도 발표자가 잘 못 하면 전달이 안 되잖아요. 저희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120% 즐길 수 있도록 연기자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려고 해요."

Q. 예능 작가의 워라밸은 어떤가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만 생각하면 ‘워라밸’이 없는 건 맞는데 나쁜 부분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일이 미친 듯이 몰려서 제 삶이 없을 때도 있지만 개인적인 시간이 넘치는 시기도 있어요. 이번 주는 일주일에 3일을 밤새우며 일을 했는데 다음 주에는 평일 3일 이상 시간이 생겨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일이 많을 땐 스트레스를 받긴 하지만 다 해치우고 난 뒤에 오는 개운함이 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언제 가장 힘들고,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섭외가 안 될 때, 출연자가 할 수 있는 범위와 내부에서 원하는 범위 차이가 커서 중간 조율이 힘들 때, 까다로운 출연자를 만났을 때 등인 것 같아요. 분명히 힘든 적이 많았는데 금방 잊는 편이라 다시 떠올리려 하면 기억이 잘 안 나요.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우리가 상상하고 그린 대로 방송이 될 때예요. 시청률이나 화제성 등 피드백이 좋을 때는 더더욱 뿌듯합니다."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Q. 방송작가가 ‘열정페이’라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2009년)는 한 달 80만 원을 받고 시작했어요. 당시 막내는 100만 원만 받아도 잘 받는 편이었죠. 다행히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요. 한 주당 40만 원 전후로 한 달에 약 120만 원 받는다고 들었어요. 직장인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죠.

연차가 오를수록 페이도 함께 오릅니다. 7~8년 차 정도 되면 한 달에 약 300만 원 정도 받는 것 같아요. 더 올라서 메인급 작가가 되면 500만 원 언저리 정도 받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정확하게는 모르고 ‘카더라’ 소식통이긴 하지만요. 메인작가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이 오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예능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KBS '프로듀사' 캡처
우 작가는 '열정페이'보다는 결방 시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부분에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대부분 방송작가는 월급 개념이 아니라 방송 한 회당 페이를 받습니다. 섭외, 구성, 원고 작성 등 업무에 참여했어도 ‘무송출은 무노동’이라는 관행 때문에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지난 6월 방송작가 4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80.8%가 “불방•결방시 임금을 아예 받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올림픽, 월드컵 등 특수한 상황에 결방이 되면 저희의 한 주 급여는 날아갑니다. 그래서 저희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결방’이에요.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는 아주 적은 기획료를 받거나 무페이로 준비하는 경우도 많아요. 요즘엔 시즌제 프로그램이 많은데 몇 달을 준비하고도 8회분, 16회분 정도의 페이만 받게 되니 작가로서는 슬픈 일이죠."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년 동안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이어가는 이유도 있습니다. 우 작가는 중학교 시절부터 방송작가를 지망했으며 고등학교 시절 교내 방송반 작가로 활동했습니다. 하루빨리 '진짜 작가'가 되고 싶어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방송작가를 시작했습니다.

Q. 11년이나 한 직업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인가요?

"1년 차에는 바라던 작가가 됐다는 기쁨에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2년 차에는 일이 즐거워서 정신없이 일했어요. 3년 차에 고비가 왔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정시 출퇴근을 하면서 3년 차인 저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데 저는 밤낮 없는 생활에도 박봉인 것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구체적으로 상상도 해봤어요. 작가 일이 일주일 중 3일 힘들고 4일 재미있다면, 다른 일을 하게 될 때는 이틀 정도 재미있고 5일이 힘들 것 같더라고요. '무슨 직업이든 힘든 일은 생기기 마련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자' 결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Q. 어떤 방법으로 작가가 되셨나요?

"대학시절 PD 출신 교수님 추천으로 방송국 인턴 생활을 하며 간접 경험을 하게 됐고 당시 프로그램 작가 선배님 소개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방송작가는 공개 채용보다는 프로그램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뽑는 경우가 많아요. 주로 작가나 방송 아카데미에서 추천을 받아 면접을 통해 뽑습니다. 요즘은 방송 관련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작가들이 많아져서 거기서도 추천을 많이 받아요."

Q.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이 있을까요?

"학력과 전공은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 센스, 성실함, 인내심 등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필수는 아닌데 영어능력은 있으면 편한 것 같아요. 해외 촬영을 갈 때나 외국인 출연자를 만날 때 ‘내가 영어 능통자라면 참 편하겠다’고 매번 느낍니다. 그럴 때마다 ‘영어 공부해야지’ 하고 잊고, 또 ‘영어 공부해야지’ 하고 잊고 그래요."

사진=우정화 작가 제공
Q. 11년 차 작가로서 가진 고민은 무엇인가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언제까지 작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연차가 높아지고 위보다 아래가 더 많아지면서 이런 고민이 들어요. 선배님들처럼 오래 현역에 있기 위해서는 계속 발전해야겠죠. 그런 의미로 아직도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요.

Q.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요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 꿈을 이루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여러 곳에 신뢰를 많이 쌓아야겠죠. 더 존재감 있고 영향력 있는 작가가 될 때까지 열심히 일 할 계획입니다.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