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기자 "90%세일소식…돈 모으기 힘든 직업"

김가영 기자2019-09-0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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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ㅣ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틸컷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기억하시나요? 패션잡지 회사에 어시스턴트로 입사한 앤 해서웨이가 상사에게 이런저런 수모를 받으면서 적응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아직 출간되지 않은 ‘해리포터’ 원고를 구해오라는 억지스러운 요구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도 펼쳐집니다.

2015년 방영한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황정음이 잡지사 직원으로 등장한 바 있습니다.

과연 잡지기자의 삶은 실제로도 이렇게 힘겹고 드라마틱 할까요? 신사동 한 카페에서 2년 차 잡지기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패션 경제지에 몸담고 있는 A 씨는 “오늘이 (원고) 마감일이다”라면서 요 며칠을 바쁘게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마감이 끝나도 그다음 마감을 위해 또 뛰어야 한다”며 웃었습니다.

“(마감 며칠 앞두고는) 난리 난다. 특히 편집장 등 임원들은 초 예민하다. 말에 가시가 있다. 그때 서로 안 건드린다. 선배들도 웬만하면 잔소리 잘 안 한다. 다들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는 거 아니까.”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키냐는 질문에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업무 외적인 지시는 없었다. 근데 ‘안 돼도 해야만 하는 일’은 있다”라고 답했습니다.

A 씨는 하루에 2~3개 외부 미팅을 가집니다. 패션업계 관계자에게 현황이나 트렌드를 읽기 위함입니다. 대놓고 녹음기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할 순 없지만 기사 아이템을 짜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시간이라고 하네요.

“책상에 앉아서 기사만 계속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하면 남들이 쓰는 기사밖에 못 쓴다. 가끔 피곤해도 누가 저녁 먹자고 하면 먹는다. 근무시간에는 관계자 미팅을 주로 돌고 오후 5시부터 기사를 쓴다.”

마감이 다가오면 주말에도 밤 새우며 밀린 기사를 쓰는 일이 많다고 하네요.

기자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벌이다
출처 ㅣ MBC '그녀는 예뻤다' 스틸컷
A 씨는 업계 선배들에게 들은 이 말을 전하며 “외근 안 하고 사무실에 있으면 ‘오늘 미팅 없니~?’라고 한다. 누구라도 만나고 와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잡지기자에게 ‘취재원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가 처음 패션계 잡지기자를 시작했을 때는 엉엉 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패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힘들었다. 당연히 업계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초년생 기자를 만나 주지 않았다. 바람맞은 적도 있다. 그 사람도 의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와의 미팅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계속 기다리다 그날은 결국 못 만났다.”

A 씨는 일주일 후 해당 취재원에게 다시 연락해 약속을 잡았습니다. A 씨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요. 아직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잘 유지된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왜 하냐고요?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A 씨는 잡지기자의 애환을 얘기하다가 “일이긴 한데... 진짜... 되게... 재미있을 때가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일이 재미있다니. A 씨는 “패션쇼에 가면 기자들은 맨 앞줄 자리를 준다. 쇼는 단순히 옷을 보는 게 아니다. 그 분위기와 음악이 합쳐지면 너무 황홀하다.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 순간에는 ‘이 일 하길 정말 잘했다’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패션에 관심이 있어야 잘 맞겠다는 말에 A 씨는 “안 그러면 못 한다. 야근 많고, 일 많고, 사람들한테 치이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데... 이런 재미가 있으니까 하는 거다”라고 답했습니다.

패션계 기자에게는 ‘패밀리 세일’ 등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고 합니다. 또한 취향에 맞는 제품을 만날 때마다 물욕을 다스리기 힘들어 집니다.

“진짜 웃긴 게 선배들 중에 돈 모았다고 하는 선배가 없다. 나도 모으기 어렵다. 예를 들어서 옷 하나에 100만원 넘어가는 브랜드에서 90%세일한다고 연락이 오면 살 수밖에 없다. 평소에 절대 그 가격에 못 산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한 달에 몇 번만 그러면 지갑 거덜난다. 조심해야 한다.”

인생 멘토를 만나는 짜릿함
출처 ㅣ 영화 '인턴' 스틸컷
A 씨가 이 직업에서 느끼는 매력은 또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그는 “평소 인터뷰하는 사람들이 기업 대표, 유명 디자이너 등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한테 자극을 받는다”며 한 기업 대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부모님 회사 물려받는 사람들도 은근 많은데 그 분은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모든 걸 거쳐서 대표가 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사원일 땐 출근시간이 7시였다는데 그분은 10년 동안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아내가 깨워준 적도 없고. 그런데 SNS로 그분 생활하는 걸 보면 그게 거짓말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이 직업이 가진 큰 매력이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잡지 어시스턴트는 월 30만 원을 받는다’는 세간의 소문에는 “지금 그런 곳은 없을 거다. 우리 회사는 순수하게 패션만 다루는 게 아니라서 어시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연봉을 묻자 “괜찮은 중소기업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A 씨는 “회사 재정 상태나 비즈니스 모델을 꼭 봐야 한다. 예전에는 급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잡지사 중에 말도 안 되는 월급을 주는 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