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못 먹는데 빵집 차린 93년생 사장님

김가영 기자2019-06-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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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빵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4시간이나 빵을 먹고 난 후에야 현금 30여만 원을 훔쳐 달아났다.

해당 영상은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화제가 됐고 많은 매체에서도 주목했다.

빵집 주인인 송성례 써니브레드 대표(26)는 “도둑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다. 홍보하려고 자작극을 벌인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라며 웃었다.

도둑 폐쇄회로(CC)TV 영상이 화제 되기 전에도 이곳은 ‘글루텐 프리’ 전문 베이커리로 유명했다.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 차전자피, 쌀가루, 현미가루 등을 이용한다.

저탄수, 비건 빵도 만들고 있어 글루텐 불내증, 당뇨, 아토피 등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일반 빵과 비교했을 때 단 맛이나 촉촉한 식감이 덜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이하늬도 단골손님 중 하나다.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6월 17일 한남동 매장에서 송 대표를 만나 창업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왜 하필 ‘글루텐 프리’ 빵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송 대표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글루텐 불내증이 있다. 밀가루 등에 들어있는 글루텐 성분을 먹으면 복부에 가스가 차고 다한증이 심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대학교에 다니면서 밴드 활동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러다 이른바 '스폰서' 제의를 받으며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밀가루를 먹으면 안 되는 체질이지만 스트레스는 폭식으로 이어졌고 건강도 나빠졌다.

그는 “꿈을 잃었는데 건강까지 잃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에 글루텐프리 식단을 시작했다”라고 계기를 밝혔다. 식단을 바꾸니 몸에 변화가 바로 찾아왔다.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청소년기부터 베이킹에 관심이 많았다. 빵을 좋아하는 데 먹지 못하니 ‘베이킹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했다. 국내에는 ‘글루텐 프리 식품’에 대한 정보와 레시피가 부족했다. 해외 논문과 레시피를 참고하며 자기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갔다.

그는 2015년부터 블로그를 통해 글루텐 프리 베이킹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자 ‘빵을 판매해 달라’라는 아토피 환자, 다이어터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무료 나눔’을 하다가 2017년 1월 구리에 8평짜리 공방을 마련했다.

처음부터 주문량이 많았다. 그는 “첫날 주문이 300건이었다. 그러면 1000개는 만들어야 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하루에 2~3시간씩 자면서 만들어서 택배로 보냈다”면서 매우 힘들었다고 밝혔다.

소량만 만들다 갑자기 많은 주문을 감당하려다 보니 실수도 많았다. 그는 “항의 전화가 매일 왔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눈물이 났다”라고 밝혔다. 다행히 블로그를 통해 소통하던 사람들이 주 고객이라 오히려 고객들이 송 대표를 달래 주며 응원해줬다.

가슴 철렁한 일도 있었다. 밀가루를 전혀 먹지 못하는 아이가 써니브레드 빵을 먹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간 것. 그는 “분명히 밀가루 대신 ‘아몬드 가루’를 사용했는데 이상했다. 알고 보니 한 공장에서 다양한 곡류를 갈면서 교차 오염이 됐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응급실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고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송 대표는 “한국에서는 글루텐프리 인증을 받은 재료를 찾기 어렵다. 인증을 받은 재료를 해외에서 직구하거나 미국에서 글루텐프리 테스트기를 들여와 검사 후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솔직하고 즉각적인 대처 덕에 2년 전 쓰러졌던 아이 손님은 아직도 단골로 남았다.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송 대표는 구리 공방을 접고 한남동에 매장을 차렸다. 글루텐 불내증을 앓고 있거나 채식을 하는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많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종종 ‘금수저’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어려운 생계 때문에 빈 집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고 송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직접 생활비를 벌었다.

그는 “한국에서 월세 보증금이며 등록금도 다 제 돈으로 냈다. 청소년기 때 부모님께 돈을 빌리면 이자를 붙여서 돌려줘야 할 정도로 경제교육을 엄격하게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그는 미국에서 설거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성인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세종대학교에 다니면서도 교내 알바, 서빙 알바, 대안학교 조교 등의 알바를 병행했고 각종 공모전에 도전해 상금을 모아 구리에 공방을 차릴 때 썼다.

그는 “흑자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임대료가 비싸서 수지타산이 안맞았다. 직원도 저까지 8명이다. 가격을 인상하면서 흑자가 났다”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경쟁사’가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제가 잘 되면 큰 회사에서도 글루텐 프리, 알레르기 프리 식품을 많이 만들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제가 낳은 아이가 글루텐 불내증이 있더라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