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모든 걸 다 가졌던 의사의 마지막 소원

이예리 기자2019-06-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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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한 남성이 있습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30대의 젊은 나이에 성형외과 의사로서 커리어 정점을 찍었던 싱가포르 의사 리차드 테오 컹 시앙(Richard Teo Keng Siang)씨. 하는 수술마다 잘 됐고 환자가 끊이지 않았으며 가족도 화목하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 가정도 꾸렸습니다.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것이 순조로운 인생이었고 누구나 그를 부러워했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직업적으로도 성공한 30대 의사, 그것이 테오 씨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었습니다. 테오 씨 본인도 스스로의 성공에 만족하며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막힘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였지만 2011년 폐암 말기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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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사회의 기준에 잘 들어맞는 ‘제품’이었다”

남은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테오 씨는 2012년 후배 의대생들을 위해 강단에 섰고, 이 강의는 영상으로 기록되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 앞에 선 테오 씨는 “나는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잘 들어맞는, 전형적이고 성공적인 제품이었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유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성공해야 행복하고, 성공이란 곧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자랐습니다.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고 성공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그는 매사에 경쟁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각종 경시대회도 모두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앞만 보고 달린 끝에 의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안과 의사가 된 테오 씨는 의료기기와 레이저 분야에서 특허를 두 개나 보유하게 됐지만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안과 진료로는 그가 바라던 만큼의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만족스럽던 중에 눈을 돌린 게 성형외과였습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갈 때는 20싱가포르 달러(약 1만 7000원)도 쓰기 아까워 하던 사람이 지방흡입이나 성형수술에는 1만 싱가포르 달러(약 854만 원)도 턱턱 쓰곤 합니다. 그래서 성형외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그럭저럭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벌던 안과의 시절에 비해 성형외과의가 되자 수입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테오 씨의 병원에는 환자가 줄을 섰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원장’직함을 달고 의사 네 명을 더 고용했습니다. 스포츠카를 수집하는 취미도 생겼습니다. 스포츠카 애호가 모임에 가입해 주말마다 레이싱을 하며 즐기거나, 각계각층 유명인사들과 파티를 즐기는 화려한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최고 정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고, 인생의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달팽이를 구해 주던 ‘특이한’ 친구

“학창시절 제게는 제니퍼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니퍼와는 지금도 친한데, 저는 어릴 적 그 친구를 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제니퍼는 길을 걷다 땅바닥에서 달팽이를 발견하면 달팽이를 집어다가 풀밭에 내려 주고 돌아오는 사람이었거든요. 이득 되는 일 말고는 관심이 없었던 저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그냥 달팽이일 뿐이잖아, 손 더러워지게 뭐하러 그래’라고 핀잔 주곤 했죠. 이제는 제니퍼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습니다.”

2011년 3월 찾아온 말기 암 진단은 테오 씨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암이라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도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졌던 스포츠카, 멋진 집, 별장, 명예로운 상장과 트로피들이 한순간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지난 몇 달 간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건 재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너무너무 아플 때 페라리를 끌어안고 운다고 해서 편안해지진 않는다”고 농담하며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그제야 실감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경쟁하느라 잊고 있었던 환자들의 존재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환자=돈’이라 여겼던 마음가짐이 한순간에 변했습니다.

테오 씨는 “만에 하나 암을 이겨내고 다시 진료를 볼 수 있게 된다면 난 완전히 다른 의사가 될 것”이라 말하며 후배 학생들에게도 환자 한 명 한 명을 차트에 기록된 병명이나 증상이 아닌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진료해야 한다고 부탁했습니다. 성공을 추구하고 부자가 되려 노력하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당부도 남겼습니다.

강의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10월 18일 테오 씨는 4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가 온라인 추모 사이트에 남긴 본인의 추모글에는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하는 것은 빠를수록 좋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부디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록 테오 씨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그가 남긴 글과 강연은 여전히 남아 묵직한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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