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노숙생활… 저는 대기업 인사팀장이었습니다

잡화점2019-04-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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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김선형(가명·50) 씨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기업 인사팀장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1995년에 회사에 들어가 15년간 일했다. 2010년 재무 상태가 악화된 회사는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제안했다. 미혼이던 김 씨는 1년 치 연봉을 받고 회사를 나왔다.

이후 전자부품회사, 광고회사, 갈빗집 등 손대는 사업마다 잇달아 실패했다. 그러는 동안 부친은 별세했고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회사를 나온 지 5년 만에 그가 택한 길은 평생 해본 적 없는 일용직노동이었다.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고 인력시장에 나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야속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몸은 병들어갔다. 혼자서 잠잘 곳을 마련하기조차 어려워진 지난해 10월 영등포역으로 왔다. 그렇게 노숙인이 됐다.

그런데 요즘 그의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다른 노숙인들의 텃세와 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디며 찬 바닥에서 지낸 지 한 달쯤 지나자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동아일보DB
영등포역은 서울시내 노숙인 밀집지역인 만큼 서울시 영등포구 복지단체 등에서 수시로 순찰을 돌며 노숙인 상담을 한다.

그는 4월부터 영등포구에서 시작한 ‘영등포역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3시간씩 영등포역사와 역 인근을 돌며 쓰레기를 줍는다. 김 씨를 비롯해 노숙인 5명이 일한다.

“청소를 하고 있으면 술 마시던 노숙인들이 자리를 비켜 주기도 하고 응원해 주기도 해요. 이 일을 통해 저는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고 그러면 제 자리를 또 다른 노숙인이 채워서 희망을 얻길 바랍니다.”

정영주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 씨와 함께 일하는 정영주 씨(69)는 중국음식집을 운영하다 2년 전에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다 사람이 숨지는 사고를 냈다. 사고 수습에 가진 돈을 다 쓰고 난 그는 지난해 5월 노숙인이 됐다.

정 씨는 “어떤 방식으로 밥을 먹을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나는 떳떳하게 밥 먹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비슷한 노숙인으로 비칠지라도 내일의 모습은 바꿀 수 있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이들은 일한 지 한 달이 되면 60만 원 남짓한 월급을 손에 쥔다. 현재 지내는 고시원 월세를 내고 식비에 쓰면 남는 돈은 거의 없다.

영등포구와 함께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진행하는 옹달샘드롭인센터 이민규 사회복지사는 “보호시설이나 역에서 자면서 무료 급식을 먹어도 살 수는 있다. 저분들은 자기가 번 돈으로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글은 동아일보 '청소원 변신 노숙인들 “희망 생겨 행복”' 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