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발레슈즈 세계 최초 출시…“지금까지 없었다니 더 놀라워”

이예리 기자2019-03-1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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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balletblack.co.uk
‘발레슈즈=연분홍’ 고정관념 깨다
다양한 인종 무용수들을 위한 베이지색, 갈색 발레 슈즈가 최초로 출시됐습니다. 영국의 무용 용품 제작업체 ‘프리드 오브 런던(Freed of London)’이 1년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10월 출시한 이 발레용 신발은 프로 무용수들은 물론 취미로 발레를 배우는 사람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진한 색 발레슈즈는 흑인·아시아인 발레 커뮤니티 ‘발레 블랙(Ballet Black)’ 창립자 카사 판초(Cassa Pancho)씨와 키라 로빈슨(Cira Robinson)씨가 의기투합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이들은 발레가 백인의 전유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늘 의문을 품어 왔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궁중무용에서 시작된 발레는 오랜 시간 백인 무용수들의 독무대였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음에도 백인 발레리나에게 주역을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 무용수였던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도 과거 인터뷰에서 “실력이 동등한 독일인과 한국인이 있다면 당연히 독일인이 뽑힌다. (이 차별을 뛰어넘으려면) 백인보다 월등한 실력이 필요하며 자신만의 색깔도 있어야 한다”며 압도적인 실력으로 승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경험을 밝힌 바 있습니다.



흑인 최초로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수석 무용수가 된 발레리나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짙은 피부색과 근육질 몸매를 가진 코플랜드는 '발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미국 발레계 정상에 올랐다. 사진=미스티 코플랜드 인스타그램
발레계의 기준이 백인에 맞춰져 있다 보니 피부색이 어두운 무용수들은 발레용품을 마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흑인 무용수들은 진한 색 파운데이션 등을 연분홍색 발레 슈즈에 바르는 수고를 거쳐야만 자기 피부색과 어울리는 신발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 신발에 화장품을 겹겹이 발라 흡수시키다 보면 신발이 물렁물렁해지고 약해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흑인 무용수들 사이에서 발레슈즈 색을 진하게 만드는 작업은 ‘팬케이크 굽기(pancaking)’ 라는 명칭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사진=balletblack.co.uk
이런 애로사항을 잘 알고 있던 판초 씨는 “진한 베이지색과 갈색, 두 가지 색을 출시했다. 작은 변화일지도 모르지만 발레계에 있어 역사적인 한 걸음을 내딛은 거라 본다”며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발레리나인 로빈슨 씨 역시 “‘팬케이크’ 과정 없이 내 피부와 맞는 신발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무용수들의 반응도 좋습니다. 프랑스 출신 발레리나 마리 아스트리드 멘스 씨는 “발레 용품 가게에서 내 피부톤에 맞는 신발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제야 내가 진정으로 이 업계에서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든다”며 반겼습니다.

취미로 발레를 접하는 일반 소비자들 역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짙은 색 발레슈즈를 파는 걸 본 적이 없다. 허를 찔린 느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 했던 부분을 ‘프리드 오브 런던’이 알려주었다”, “무용계에도 멋진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며 긍정적 평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