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 소화기, 광고회사가 만들었네…보험광고 구상중 발상 떠올라

동아일보2018-10-2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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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생산자로 진화하는 광고사들
지난달 서울 용산구 제일기획 본사에서 열린 해커톤 발표회에서 참가 직원이 팀원들과 발굴한 아이디어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제일기획 제공
최근 한 보험회사 광고에 눈에 띄는 아이디어 상품이 등장했다. 광고는 주인공의 집에 불이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상한 건 주인공의 대처였다. 그는 불을 끄기 위해 소화전이나 분말식 소화기를 찾는 대신 대뜸 탁자 위에 올려진 꽃병을 집어 불을 향해 던졌다. 신기하게도 꽃병이 깨지면서 불도 함께 꺼졌고 광고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 정체불명의 꽃병은 투척식 소화기의 일종이다. 꽃병이 깨질 때 나오는 소화액이 급속냉각 효과와 함께 산소를 차단하면서 불이 꺼지는 원리다. 평소 소화기의 사용법은 물론이고 위치조차 제대로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겐 무릎을 칠 만한 획기적인 상품이었다. 실제 최근 광고가 상영된 서울의 한 극장 관객석에선 광고가 끝나자마자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후 광고 속 보험회사로 ‘꽃병 소화기’의 구입처를 묻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광고 내용만 보면 보험회사가 개발한 이색 상품 같지만 실제 제품 아이디어를 낸 건 보험회사가 아닌 광고 제작사였다. 해당 광고를 만든 제일기획 관계자는 “소화기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위치나 사용법을 몰라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면서 “눈에 쉽게 띄면서 사용법이 간단한 제품을 만들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보험회사 고객 배포용으로 만들었던 꽃병 소화기는 소비자들의 호응이 계속되면서 조만간 시중에 판매될 예정이다.

최근 국내 광고업계가 주특기인 아이디어를 내세워 실제 제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있다.



제일기획이 최근 선보인 ‘꽃병 소화기’(왼쪽)와 이노션의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 각 업체 제공 
올해 초 뉴욕에서 열린 미국 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선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선글라스는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할 경우 경고음을 내고 진동을 울린다. 안경다리를 교체하면 다른 기능도 적용할 수 있다.

정보기술(IT) 전문 기업의 아이디어 상품 같지만 해당 제품을 개발한 건 국내 광고업체 이노션이다. 이미 특허출원을 완료한 이노션은 내년 하반기쯤 해당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이노션 관계자는 “광고회사들이 광고를 제작하는 전통 업무에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활용해 실제 제품을 내놓는 등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신은 최근 시장 포화상태에 이른 광고업계가 내놓은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풀이된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나 그 회사의 이미지를 잘 포장해주는 것만으로는 광고회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광고회사의 참신함을 활용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업계의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업계도 아이디어 발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일기획은 사원들의 아이디어 상품을 적극 발굴하는 해커톤 대회를 올해 처음 열었다. 해커톤은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한정된 기간 내에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 참여자가 팀을 구성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완성하는 행사다. 지난달 열린 대회에선 차량의 내부 온도와 공기의 질 등을 감지해 사고를 예방하는 스마트 시스템, 술의 종류에 따라 최적의 온도를 맞춰주는 냉장고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제일기획은 올해 해커톤 수상 팀에 총 상금 5000만 원을 수여했다. 회사는 아이디어별로 사업성을 검토해 향후 실제 사업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다.

유정근 제일기획 사장은 “과거 아이디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광고업계지만 최근에는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생각한 것을 실제로 만들고 구현해가는 과정을 계속 이어간다면 광고업체의 글로벌 무대 경쟁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