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녹초되는 직장인 ‘번아웃’, 이젠 OUT

동아일보2018-08-23 10:48
공유하기 닫기
“일론, 테슬라의 미래는 당신이 얼마나 오래 깨어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정기적으로 재충전할 시간을 갖는다면 테슬라는 더 나아질 것입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17일 세계적인 혁신가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머스크가 전날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일주일에 최대 120시간을 일하고 있다. 이번 생일에도 24시간 일했다”며 과중한 업무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었다. 허핑턴은 20일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이 문제는 머스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소진시키는 것이 성공을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는 오해에 대한 것”이라며 공개서한을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허핑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최근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직장에서 장시간, 많이 일하는 것이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CNBC는 14일 “회사들이 직원들의 번아웃(Burnout·극도의 피로) 위기에 직면했다”며 갤럽의 최근 연구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미국 내 정규직 직원 75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 따르면 23%는 직장에서 항상 혹은 매우 자주 번아웃 증상을 느끼고 있으며, 44%는 때때로 번아웃 증상을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일을 많이 할수록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 보도했다. 프랑스 ESCP 유럽 경영대학원과 영국 런던 시티대 카스 경영대학원 공동 연구팀은 유럽 근로환경조사(EWCS)에 참여한 36개국 직장인 5만1895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긴 시간 동안 높은 업무 강도의 일을 수행한 사람들은 덜 행복할 뿐만 아니라 직업 만족도도 낮고, 승진에 대한 기대도 낮은 경향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팀은 FT에 “미래의 커리어 전망을 향상시키겠다는 희망으로 현재의 행복이 희생되는 것을 감수하는 건 실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번아웃 증상을 느끼는 직원이 늘어나면 기업 차원에서도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갤럽에 따르면 항상 혹은 매우 자주 번아웃 증상을 느끼는 직원들은 번아웃 증상이 없는 직원에 비해 △병가를 낼 확률이 63% 높고 △업무 수행 자신감이 13% 낮으며 △관리자와 업무 수행 방법에 대해 논의할 확률이 50% 낮고 △응급실을 방문할 확률이 23% 높다.

이에 정부와 기업들은 우선적으로 ‘업무 시간 줄이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가장 먼저 대책을 마련한 곳은 프랑스다. 2017년부터 근무시간이 아닌 시간에 업무 이메일을 주고받지 않을 권리를 법제화했다. 독일은 2014년부터 근무시간 외 직원에게 연락을 금하는 ‘안티 스트레스 법안’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올 3월 미국 뉴욕시 의회에는 10인 이상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됐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2012년 독일 폴크스바겐은 오후 6시 15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개인에게 사내 이메일 발송이 되지 않도록 막았다. 2014년 독일 다임러는 휴가를 떠난 사원에게 발송되는 이메일이 다 삭제되도록 조치했다. 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BOA메릴린치 등도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