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행복한 아이들의 ‘대장’… “꼭 필요한 어른 되고싶어”

동아일보2018-06-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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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2일 서울 A아동복지시설에서 김광현 단장(가운데)과 WE모두나눔봉사단원들이 아이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무명 영화·연극배우들이 모인 WE모두나눔봉사단은 2014년부터 매달 한 번씩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장! 대장, 언제 왔어요?”

22일 학교 수업을 마친 은지(가명·10)가 서울 A아동복지시설로 뛰어 들어가며 ‘대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김광현 WE모두나눔봉사단장(47)과 눈이 마주친 은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대장’은 아이들이 매달 한 번 A아동복지시설을 찾는 김 씨를 부르는 별명이다. 이곳엔 부모를 잃거나, 부모가 떠나 혼자가 된 아이들 70명이 모여 산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김 씨를 ‘대장’이라고 부르며 경계를 푼 건 최근 들어서다. 김 씨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이곳에서 2016년 6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를 ‘무명 배우’라고 불렀다. ‘아는 여자’ ‘범죄도시’ 등 영화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학창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한 김 씨는 1994년 OB베어스 포수로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삼성 등에서 활동하다 2000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출범 사태로 사실상 방출됐다. 20년간 야구밖에 몰랐던 김 씨는 그 뒤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다.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아픔이 ‘무명 배우’라는 단어에서 묻어났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심해졌어요. 그 순간 저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봉사였어요. 나처럼 혼자 버려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나,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죠.”

프로야구 선수 시절 구단 차원에서 1년에 한두 차례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인을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한 김 씨는 2014년 무명 영화·연극배우들을 모아 WE모두나눔봉사단을 만들었다. 김 씨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경기 여주시 밀알선교장애인쉼터였다.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여주시가 전국 1위라고 하더라고요. 홀몸노인, 장애인 등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래요.”

매달 한 번씩 쉼터를 찾아 건물 보수, 청소 및 미용 봉사를 했다. 단원들이 직접 삼계탕을 끓여 장애인들과 나눠 먹었다. 계속된 단원들의 봉사에 이곳에 머물던 장애인이 20여 명에서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여주시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쉼터 형편도 나아졌다.


봉사단은 2016년부터 아이들도 돌보기 시작했다. 이날 A아동복지시설 마당에 머리를 감고, 자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미용버스가 도착했다. 머리를 맡긴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봉사단원인 미용사 한은진 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미용봉사를 돕던 한상원 씨는 “우리를 보면 ‘고생한다’ ‘수고한다’ 하는데 봉사를 안 해본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행복이 있다”며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에 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씨는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들에게 승마를 가르치면서 WE모두나눔봉사단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WE모두나눔봉사단이 출범했을 때 회비는 3만 원이었다. 회비를 모아 삼계탕도 끓이고, 집수리도 했다. 무명 배우의 벌이가 변변치 않다 보니 단장인 김 씨조차 회비가 밀리곤 했다. 지금은 정식 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났고 회원들의 처지를 고려해 회비를 1만 원으로 내렸다. 다행히 후원금 또는 물품으로 도와주는 분들도 생겼다.

김 씨는 나눔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에 진출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땅히 기댈 곳 없이 사회로 나간 아이들은 홀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달랑 500만 원 갖고 사회에 나간다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배우가 되고 싶으면 연기를 가르치고, 미용사가 되고 싶으면 기술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

미용버스 곁에서 바비큐 파티를 위해 고기를 굽는 김 씨와 단원들 주위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마당이 금세 ‘깔깔’ 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이름도 없고, 돈도 없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어른이 되려고요. 외롭지 않도록요.”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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